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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애 공간 조성을 위한 실제 사례

by jamix76 2026. 2. 14.

오늘날 도시와 공간은 단순히 기능과 미관을 넘어서, 모든 사람의 이동과 체류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공간이 제공하는 물리적 조건이 특정한 사용자 집단만을 중심으로 설계되었지만, 고령화 사회의 도래와 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 그리고 보편적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면서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는 철학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무장애 공간이란 단지 휠체어나 유모차를 위한 경사로 설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누구도 공간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실천적 설계의 결과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무장애 공간이 실제 사회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으며, 어떤 철학과 기술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지를 구체적인 국내외 사례를 통해 상세히 살펴봅니다.

모두를 위한 공간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공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주거 공간, 교육 공간, 의료 시설, 도로, 공원 등 다양한 유형의 공간은 인간의 행동과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간은 비장애인, 혹은 평균적인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왔습니다. 이는 신체적 제약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용 불가능한 공간'을 의미하고, 곧 사회적 배제의 구조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고령자, 임산부, 휠체어 사용자, 시각·청각 장애인, 유모차를 끄는 부모 등은 일상에서 수많은 ‘공간의 장벽’에 직면합니다. 엘리베이터 없는 지하철역, 턱이 있는 출입구, 너무 좁은 복도, 시각 정보만 제공되는 안내 시스템 등은 그 자체로 이동과 활동을 제약하며, 때로는 스스로의 존엄을 훼손당하는 경험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무장애 공간(Barrier-Free Space)’이라는 개념입니다. 무장애 공간은 단순히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두를 위한 기본적인 공간’을 설계하자는 철학입니다. 이 철학은 유니버설 디자인의 핵심 가치와도 맞닿아 있으며, 이용자의 다양성과 일시적 장애까지 고려한 포괄적 접근을 의미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특별한 배려’가 아닌 ‘당연한 배려’로서, 무장애 공간은 이제 설계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1998년 제정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을 통해 공공건축물과 대규모 민간시설에 대한 무장애 설계 기준을 제도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무장애 인증제도 및 BF(Barrier-Free) 마크 도입 등을 통해 실질적인 실행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공간 설계의 출발점부터 이용자의 실제 경험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사용자 중심 설계(User-Centered Design)’가 동반되어야 하며, 이것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무장애 공간은 실현됩니다. 그렇다면, 실제 공간에서 이러한 철학은 어떻게 구현되고 있을까요? 단순한 경사로나 엘리베이터 설치를 넘어서, 공간이 사람을 어떻게 포용하고 있는지를 실제 사례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현장에서 실현된 설계의 힘

국내 무장애 공간 사례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곳 중 하나는 서울 마포구의 ‘문화비축기지’입니다. 이곳은 원래 석유비축기지였던 산업시설을 문화공간으로 재생한 대표적 도시재생 프로젝트입니다. 놀라운 점은 과거의 구조적 한계를 오히려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며, 다양한 이용자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확보했다는 점입니다. 입구부터 내부까지 이어지는 동선은 턱이 없는 완만한 경사로로 구성되어 있어 휠체어, 유모차, 노약자 모두 쉽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출입문은 자동문으로 설계되었고, 문 너비 또한 기준치보다 넓게 설정되어 누구든지 편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내부 공간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지도 및 음성 안내 시스템이 병행되어 설치되어 있으며, 전시관 안에는 수어 영상이 제공되어 청각장애인의 정보 접근권도 보장됩니다. 이러한 접근은 단지 ‘편의성’ 제공을 넘어선 것입니다. 공간 이용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아우르는 ‘사용자 여정(User Journey)’을 고려한 설계가 실제로 반영된 사례로, 현재는 BF 우수 시설로 인증받으며 국내외 설계 사례에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부산 해운대구의 ‘해운대 도서관’도 주목할 만한 사례입니다. 노후된 도서관 시설을 전면 리모델링하면서 도입한 무장애 설계 요소는 단지 법적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 아닌, 모든 사용자의 경험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도서관 내 모든 책장 사이 간격은 휠체어가 자유롭게 회전할 수 있도록 재배치되었고, 안내 표지판은 시각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을 위한 색상·도형 체계를 병행 적용하였습니다. 또한 어린이 공간에는 바닥에 시각적으로 유도하는 그래픽 동선을 삽입하여 자율적 이동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저시력자와 고령자도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고대비 색상이 적용되었습니다. 이렇듯 ‘사용자 다양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적용은 공간을 단순한 장소가 아닌, 사회적 소통의 장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해외 사례도 살펴보겠습니다. 일본 도쿄의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는 지하철, 상업시설, 고층 오피스가 연결된 복합 공간이지만, 그 모든 공간에 무장애 설계가 적용되어 있습니다. 주요 통로마다 휠체어 대기 공간이 명확히 표시되어 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바닥 유도 블록은 단절 없이 이어지며, 다국어 및 수어 디지털 안내 시스템도 구축되어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모든 설계가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 아래 통합적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천은 결국 ‘설계의 철학’에서 출발합니다. 기술이나 자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간을 누가,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끊임없이 상상하고, 배려하는 자세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공간, 그 안에서 존중받고 보호받는 경험은 비단 소수만의 권리가 아니라 모두의 권리이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설계의 힘입니다.

무장애 공간을 넘어서는 설계의 미래

무장애 공간이라는 말 속에는 ‘이용의 자유로움’뿐 아니라, ‘사회적 정의’에 대한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불편함’이라고 느끼는 요소들은, 누군가에게는 그 공간 전체를 거부당하는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장애 설계는 단순히 ‘편의 제공’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기반입니다. 앞서 살펴본 국내외 사례는 단순한 공간 구성의 문제가 아닌, 사용자를 존중하는 ‘문화적 태도’의 반영입니다. 특히 한국처럼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장애인의 사회 참여율이 높아지는 사회에서 무장애 공간은 복지의 문제이자, 도시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향후 무장애 설계는 더 이상 법적 의무나 제한된 대상만을 위한 특별한 설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동권, 정보접근권, 안전권을 모두가 동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설계 초기 단계부터 다양한 사용자의 참여가 필수적입니다. 이를 위해 사용자 협업 디자인(Co-design), 경험 기반 설계(EBD), 사용자 시뮬레이션 등의 방법론이 더 활발히 활용되어야 합니다. 또한 공간 설계자뿐만 아니라 행정, 정책, 시민사회 전체가 ‘무장애 철학’을 공유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무장애 설계는 건축적 기술이 아닌 ‘사회적 실천’이며, 사회 전체가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일시적 혹은 영구적인 불편을 겪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장애 공간은 ‘그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공간입니다. 이제는 이러한 공간을 확장시켜야 할 때입니다.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디지털 정보 공간, 교통 환경, 문화시설 등 사회 전반의 모든 공간에서 ‘접근성’이 중심 가치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진정한 무장애 공간은 보이지 않는 배려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입구의 경사로일 수도 있고, 안내 시스템의 수어 영상일 수도 있으며, 혹은 화장실 안에 있는 접이식 손잡이일 수도 있습니다. 작지만 세심한 설계의 조각들이 모여 진정한 포용의 공간을 만듭니다. 앞으로 더 많은 디자이너와 설계자들이 이 철학을 받아들이고, 공공과 민간이 함께 무장애 설계를 실현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결국은 우리 모두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길입니다.